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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사신문]임봄의 인문학여행 [071] 자서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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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경기남부하나센터
댓글 0건 조회 180회 작성일 24-06-2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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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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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한 자서전 쓰기 수업을 마무리했다. 북한이탈주민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는 경기남부하나센터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한 지 벌써 십여 년 다 되어가지만, 이번 수업은 필자가 북한이탈주민들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반성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처음 모집했을 때만 해도 여섯 명에서 일곱 명 정도였지만 결국 끝까지 남은 건 단 두 명뿐이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글쓰기가 주는 부담 때문이기도 하겠고, 또는 자서전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글에서 북한이라는 사회주의 체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나 혹은 아직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혹여라도 피해가 갈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비록 두 명이 시작한 자서전 쓰기 수업일지라도 내게는 그 어느 때보다 귀중한 시간이었다. 우선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북한이라는 곳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이념 체제를 벗어나 우리와 똑같은 서민들의 인생, 사랑, 꿈, 좌절 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는 두 사람의 나이차가 있던 만큼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내가 갖게 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졌다는 데 있다. 그것은 아마도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정착을 돕는데도 다양한 분야에서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자서전 수업 이전에는 남한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이 함께 하는 시 쓰기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도 시가 가진 장점을 십분 활용해 이념이나 체제가 아닌 한 인간으로 만날 때는 남한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울고, 웃고, 그리워하고, 괴로워하는 감정을 깊이 공감하고 느끼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진행한 자서전은 오롯이 그들이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며 자신의 감정과 시대적 상황 등을 직접 세밀하게 글로 썼다는 점에서 시와는 또 다르게 그들의 삶이 깊은 공감과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건 아마도 자서전이라는 장르가 주는 이점 때문일 것이다. 

자서전과 관련해서는 필자의 어머니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아직 책으로 엮지는 못했지만, 자서전 집필을 염두에 두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고생했다는 이야기, 혹은 단편적으로 있었던 일화들만 듣고 자랐던 것에 비해 당시 들었던 이야기들은 어머니의 인생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일시에 가족을 잃고 험난한 세상 앞에서 혼자 살아가야 했던 한 인간, 아니 한 여성의 삶이 그토록 생생하게 다가오는 경험을 처음으로 했다. 때때로 푸념이 섞인 일화들만 들었을 때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야 필자는 어머니를 한 인간으로, 나와 같은 한 여성으로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잠시라도 눈에 보이지 않을 때, 특히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귀가하지 않을 때, 혹은 전화를 걸었는데 계속 받지 않았을 때, 어머니가 왜 그렇게 안절부절했는지, 왜 전화를 받을 때까지 수십 번 전화했는지, 그래도 전화가 안 되면 시간 가리지 않고 직접 찾아 나서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한꺼번에 눈앞에서 사라진 트라우마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 자서전을 통해 알게 된 셈이다. 

자서전은 단순히 개인의 삶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 중요한 도구이다. 자서전을 읽는다는 것은 한 개인의 내면과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여행과도 같다. 개인의 경험과 생각 등을 통해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하는 것,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만이 아닌, 그 속에 담긴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통해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자서전이다. 

자서전은 저자가 삶을 성찰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담게 되는데 이는 독자들이 자기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나아가 자아 인식과 자기 이해를 높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독자는 개인의 삶이 담긴 자서전을 통해 그 시대의 문화, 사회적 분위기, 역사적 사건 등을 생생하게 전달받고 특정 시대와 문화를 생동감 있게 이해할 수 있다. 북한에 관한 이야기를 뉴스로 듣거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단발성으로 듣는 이야기와는 또 다르게 한 인간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한 것,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 속에서 한 어린 여자아이가 겪어야 했던 시대적 아픔이 현재의 어머니 모습과 합쳐지면서 깊이 있는 이해를 끌어낸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들을 타인에게 쉽게 털어놓을 기회가 없다. 아니 털어놓는다 해도 그것에 깊이 공감해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책이라는 형식을 갖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독자와 만난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돌아보며 생을 정리하면서 성찰할 수 있고, 독자는 자신과 다른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접하면서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필자가 자주 사람들에게 자서전 쓰기를 권유하는 이유이다. 

 

임봄 기자 foxan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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